史기꾼들, 심용환, 권력전쟁, 서울의 봄.


"평범한 사람들을 전쟁의 미수에 빠뜨려, 인생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권력이 아닐까해서 역사전쟁, 권력전쟁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충격적이고 치열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 아닐까..

권력을 뺏었던 사람들의 치열했던 전쟁 이야기.





안본사람이 없는 거 같은영화.

서울의 봄.
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을 일으킨 군부 세력과 이에 맞선 군인들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죠.

어쩌면 " 우리 세대에겐 익숙한 이야기가 다음 세대에겐 충격이지 않았을까."

12.12 군사 반란은 비하인드 스토리와 잘못된 통념까지 싹 훑을 예정입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신군부가 저지른 1979년 12.12 군사 반란 이야기.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 군을 근본부터 흔든,  비밀 사조직 중에 이렇게 유명한 사조직은 없을 거예요.

군 내 비밀 사조직인 하나회, 영화 서울의 봄 마지막 장면 기억하시나요?





12.12 군사 반란 후 승리 기념 단체 사진입니다. 

하나회의 시작은 " 태양과 조국을 위하는 하나같은 마음!"

육사 11기 출신이 만든 엘리트 모임입니다. 





하나회 멤버들만 쭉쭉쭉 승진을 한 것.

전두환과 노태우의 경력을 보면, 




두사람은 훗날 대통령에 당선되죠.

하나회 내부에서만 권력이 순환하는 구조였던 거죠. 하나회가 권력을 펼칠 수 있었던 강력한 배경이 있었습니다. 




1973년 전두환씨가 육군 준장으로 진급하게 됩니다. 

대통령이 된지 4년만에 준장으로 진급하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한 대통령 암살 사건이 발생합니다. 


1979년 10. 26 사태가 발발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뒤집히게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총에 맞아 서거하고 나라를 이끌었던 대통령 자리에 공백이 생깁니다. 

어릴 때의 공포감, 기억에 남아 있는 역사 편린. 박정희란 존재의 후원 속에서 성장해 왔는데, 하나회의 배후가 사라지게 됩니다.  이대로 가면 민주화가 되고 하나회의 위상은 사라집니다.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1979년 12.12 군사 반란이었죠.

하극상이자 군사 쿠데타. 




탱크와 병력을 앞세운 1979년 12월 12일.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군사 쿠데타. 

그날 밤, 군사 반란 세력에 치열하게 맞섰던 진압군. 

현실 속에서 일어났던 이야기고 이들의 반란을 막으러   치열하게 싸운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 역할의 실존 인물,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장군. 

6개월 단기 교육을 받은 갑종 간부후보생 출신입니다. 


"군인이 왜 정치를 하느냐."

하나회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습니다. 




위계질서와 원칙을 중시하며 군인의 임무를 수행하려는 신념이 강한 인물입니다. 

처절하게,  장태완 장군의 패배로 끝납니다. 

12.12 군사 반란 이후, 반역자로 체포된 장태완 장군. 하급 장교들에게 끌려가서, 감금 후 고문을 당한 장태완 장군.  강제로 전역 지원서를 쓰게 합니다. 

30년 동안 몸 바친 군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후에도 비극은 끝나지 않았는데.... 감옥에서 풀려난 지 얼마 안 돼서,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아들이 보안사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tv를 통해 알게 되고 충격이 너무 커서 식음을 전폐하다가,  운명을 달리한 아버지.





학교 간다고 나갔는데, 갑자기 실종된 아들. 

행방불명돼 버린 거예요. 사라져버렸어요.  전혀 연고가 없는 낙동강 산기슭에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끝내 사인을 밝히지 못한 아들의 죽음. 가족을 잃은 비극을 품고 살아가게 된 장태완 장군.

하지만 가장 모욕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건, 





군 내 권력 균형을 위해 화나회를 견재했던 정 총장.

결국 12. 12 당일 반란군에게 강제 연행합니다. 한순간에 연행이 돼서,  당연히 보안사로 끌려갔고, 

옷을 발가벗고 물고문도 당하게 됩니다. 하급 장교들에게 하극상을 장한 정승화. 

하지만 고문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기지 않았는데, 너무 모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등병으로 강제 예편됩니다. 

17단계로 계급이 강등됩니다.  4성 장군에겐 충격적인 강등이죠.

내란 지도 방조 협의로 쟁역 10년 선고후 복역을 합니다.  

영화는 이쯤에서 끝납니다. 이제 하나회 그들의 시대죠.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국민의 자유와 복리에 정진해 노력하고, 자유라는 자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했죠. 

사회는 독재 체제,  그와 함께한 허화평, 허삼수, 정호용 등의 사람들이 




정경유착을 시도합니다. 

리베이트를 받은 다음에 특정 기업에 특권을 주고,  80년대 기준으로 약 1조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추정되는 전두환 일가.  대통령 집권 7년 만에...

그런데 우리의 역사는 그렇게 끝나지 않죠.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당당히 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겨냈다는 거죠.
 
1980년 5.18 민주화 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된 거죠.



민주 정부 수립과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한 6월 민주 항쟁.

무차별 최루탄 난사로 대응한 정권, 그런데 독재 체재에 맞선 함성은 더 커져가고,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




민주화에 대한 열정과 요구가 이어지면서, 

드디어, " 우리의 권리를 얻게 된 거죠."

노태우 씨는 "민주화의 야망을 부정할 수 없다." 

민주 정부 수립과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합니다. 





민주주의 만세, 민주주의 역사가 새롭게 쓰이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궁금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정승화 총장과 장태완 장군. 드디어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패자들의 역습. 

정승환 장군은 지금 이등병으로 예편했잖아요.

1987년에 민주화의 길이 열리자,  통일민주당에 입당합니다.




" 입당 목적이 정치인 되려는 거 아니다." 

정승화 총장과 장태완 장군이  힘을 합칩니다.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12. 12 내란 및 반란 혐의로 고소합니다. 




군의 명예회복과 쿠데타 재발 방지를 위한 고소, 

민주주의 상징인 법으로 공격합니다.  권력 전쟁의 패배자인 줄 알았던 두 사람이, 신군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진짜 전쟁이 시작됩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전역 군인이 모인 국내 최대의 보훈 안보 단체입니다. 

제향군인회 회장 선거에서 직선제로 당선이 됩니다.  480만의 예비역의 대표가 됩니다. 

직선제에서 53% 지지로 당선, 





장태완 장군의 두 가지 선언!

군의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니다.  군의 정치적 중립을 약속합니다. 

12. 12 군사 반란과 5.18 민주화 운동 실록을 발간합니다. 

재향군인회에서 자기들의 치부라고 여긴 주제에 대해서  신군부 군사정권의 진실을 밝히기 시작합니다. 

패자들의 역습!!

장태완 장군이 적극적으로 과거 청산에 나서자  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국군보안사령부!
국군보안사령부는 군 기강 유지와 군사 기밀 보호, 내부 감시와 첩보 수집을 담당합니다.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보기관입니다.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모든 대상자를 감시합니다. 

신군부와 관련된 잘못된 것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전 국민이나 조직들을 대상으로 

감시를 한 극비 문서 목록이 발견됩니다. 

보안사에서 핵심 요직들에게 계속 동향을 보고하는데,  감시 대상자가 어마어마합니다. 





재향군인회 회장이 되었지만,  계속해서 그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는 보안사.

문서 목록만 5000개 이상,  극비 문서 수백 권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최초 공개하는 보안사 극비 문서. 






이 문서에서  가장 충격인게 뭐냐면   "청파했으므로 보고하겠습니다. "

청파는 도청한 내용을 보고하겠습니다.  그렇게 약 15년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그런데 이 감시가 오래가지 못한다. 

기밀문서의 내용이 슬그머니 바뀝니다.  또 다른 극비 문서를 살펴보면, 





왜 보안사는 갑자기 감시의 방향을 하나회로 틀었을까?

시대가 바뀐거입니다. 

12.12 군사 반란 희생자나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를 감시했다면,  " 군대에 남아 있던 하나회 회원들을 감시를 하면서, 보안사 감시 의 방향이 하나회로 바뀌었습니다. "

장태완 장군, 정승화 총장이 직접 그 문서를 봤더라면, 아마 대성통곡을 하셨을거 같다고.




보안사의 방향 전환은 장태완 장군과 정승화 총장 두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이런 결과가 안 나와요.

보안사가 국민들의 달라진 분위기를 의식한 결과입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여명이 뜨거웠던 상태에서  하나회를 숙청하고 옛 조선총독부를 철거합니다. 

경북궁 재건과 금융실명제 등 과감한 개혁 정치가 이뤄지던 때,  하나회의 군 권력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하나회 숙청으로 군사정권은 종식.

그뿐만 아니라  옛 조선 총독부 철거, 경복궁 복원. 




대통령은 왜 그런 행동을 했었을까요? 국민들이 지지하니까,  개혁 정책으로 초기 지지율 90%에 육박하게 됩니다. 

" 민주 개혁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강력한 힘!!"

"신군부의 시대가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 

심용환이 고등학교 때, 아버지와 동네 아저씨들이 신문을 넘기면서 " 요즘 신문 보는 게 재밌다" 

라고 했었는데, 강력한 개혁정치가 추친이 되고 있었고,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같이 이어지게 되면서, 이 모든 이들의 모력이 합쳐진 결과는?





과거에 성공한 쿠데타를 재판에 올려서  내란 및 반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었던 사례입니다. 

1심. 2심 3심에 걸쳐서 확정되고  해결하기 위해서 수십 년간 노력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입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하나회 균열의 물꼬를 튼 인물이  권력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은 장태완 장군과 정승화 총장." 

이 두 사람을 기억해 주세요.

출처: 史기꾼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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