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클라스, 신주백교수의 우리역사, K-콘텐트로 다시 태어나다, 근대사 콘텐트. 한국 근대사를 담은 콘텐트의 역사적 가치. 영화 암살.

  

빼놓을 수 없는 K- 콘텐트는 단골 배경인 근대사죠.  이 시기를 다룬 콘텐트는 어떠한 상상력이 가미되었는가.격동의 근대사를  다룬 콘텐트. 시작합니다. 



지금부터 설명하려는 근대사라는 시기는  약 150년 전 개항 시기에서 출발합니다. 

근대화와 동시에 자본주의 열강의 침탈을 겪어야 했던 조선, 그리고 35년간 지속되었던 일본의 식민지배. 시련과 고통의 연속 , 격동의 시기였던 한국 근대사.


Q. 한국 근대사를 다룬 영화, 드라마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천만 관객 돌파 영화,  암살.



1933년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원들이 친일파 암살 작전을 벌이는 도중 일본 측 밀정과 청부살인업자가 개입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과 치열한 분투 과정을 담은 영화.

실존 인물을 다룬 것으로도 유명한 암살.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열사를 모티브로 한 배역 안옥윤.

두 손가락을 잘라 독립 의지를 다지고 직접 총을 들고 무장 투쟁하며 조국에 목숨을 바친 여성 독립운동가.

암살 개봉 이후 재조명된 남자현 열사.  그후  여러 여성 독립운동가들 또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죠. 오늘 소개한 인물은 조승우 배우와 이정재 배우의 역할.

조승우 배우가 연기한 김원봉부터 볼까요?







압도적 카리스마를 보여준 영화 속 김원봉. 



자기주장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김원봉, 실제로 30~40대 때 찍은 사진이라고해요. 김원봉 선생은 1898년생이에요. 영화 속 배경이 1933년이므로 영화 속 김원봉 나이는 36세입니다. 

중국에서의 활동은 18세 때부터 독립운동에 뛰어든 김원봉.



국내에 알려지게 된 때는 3.1운동 직후입니다. 중국에서 의열단을 조직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거쳐 국내에 들어와 활동한 독립운동가들. 




폭탄 투척 사건을 감행한 의열단들, 그들의 지도자가 바로 김원봉인데 그 모든 일을  20대에 행한 것. 그래서 이름만 대도 다 알았던 거에요.

영화속 김원봉이 김구를 만나는 장면을 보면 



22살 연상인 김구와 대등한 위치로 묘사를 했죠. 

Q. 김원봉의 업적이 뒤늦게 조명된 이유는 뭘까요?


해방 이후 1948년 월북을 택한 김원봉, 당시 몇몇 독립운동가들이  암살을 당했기 때문에 1947년 대표적인 예가 여운형 암살 사건이죠. 광복과 좌우합작에 평생을 바친 여운형.




남북 분할 점령으로 해방 직후에도 혼란했던 한반도의 비극.




1948년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연석회의.
남북 통일 정부 수립을 의논하던 자리인데  김일성, 김구 드디어 통일에 대한 희망이 보이던 순간, 이념 대립 속에 결국 북한행을 선택했죠. 

그런데 북한 정권 수립 때 



결국 김일성에게 숙청 당했다고 추정되는 비운의 인물이에요. 남북 분단으로 인해 뒤늦게 조명됐던 그의 업적. 

김원봉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전환된 건 90년대 이후입니다. 선생님의 학창 시절에도 배운적 없던 이름이라고해요.

뒤늦게나마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김원봉. 앞으로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이 조명되길,



증조 할아버지께서 안중근 의사 옆집에 사셨다는 박재민. 

힘들 때 서로 돕고 의지했던 두 사람,  그러던 중 블라디보스토크로 독립운동을 떠났다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재민의 증조부.

이 시기의 영화를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고,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지만 이름조차 다 알지 못하는 현실. 증조할아버지도 독립유공자 자격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에 증조할아버지처럼 잊혀진 독립운동가가 얼마나 많을지.

그리고 또 암살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실존 인물, 



비열함의 끝판왕인 염석진이죠.



왜 동지를 팔았냐는 질문에 




저 대사를 들으니까 가슴이 무겁다고, 실제로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렇게 생각했을까, 그들을 변호하려는 것도 옳았다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생각보다 훨씬 첨예했을 갈등.

당시 복잡한 정세를 상징하는 대사네요. 






독립운동가들을 죽인 극중 염석진.





결국 안옥윤의 손에 처형당하는 통괘한 결말. 염석진의 모티브는 실존 인물 염동진입니다. 



1930년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염동진, 만주로 넘어가 투쟁을 이어갔지만, 당시 만주에 주둔하던 일본군인 관동군,  관동군 헌병에게 체포돼 밀정으로 변질,  해방 이후 귀국해 우익 테러단체를 조직했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현준혁을 암살했다고해요.




살인 청부가 있었는지는 불문명하지만  스스로의 신념으로 저지른 만행.

독립운동에서 있어선 안 될 존재죠.

그러던 중 발발한 6.25전쟁, 염동진은 서울까지 점령한 북한군에게 붙잡힌 후  결국 사형당했다고 추정된다고해요.



역사 영화로서 암살이 의미 있는 이유

언급을 기피했던 독립운동가 김원봉부터  밀정으로 변절했던 친일파 염동진까지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뤘기 때문에  굉장히 모험적인 영화였다고 해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하고 근대사의 복잡함을 묘사함과 동시에  관객에게 통쾌함까지 선물한 암살, 그래서 더욱 가치 있는 영화 암살.

영화 속 사실과 상상의 요소를 볼 때 꼭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영화 속 배경은 1933년 당시 만주에서 활동했던 한국 독립군,  하지만 남자현 열사를 파견한 적은 없습니다.  독립군 부대를 파견한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가상의 이름을 썼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한국 독립군이라고 특정해서 표현하니까 




1933년엔 두 사람이 손을 안 잡아요. 당시엔 독립운동 노선을 달리했던 두 사람. 각자 활동하느라 여유가 없었어요.

1942년에서야 손을 잡았던 것이 팩트



김구와 김원봉은 1933년이 아닌 1942년에 화합을 합니다.  주로 무장투쟁을 다룬 영화인 암살.

출처: K- 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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