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될때 조선을 세운사람
혹자는 이성계라고 하지만 단연 정도전임!
성공한 혁명가이자 성공한 개혁 정치가인 정도전!
정도전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조선을 세운 킹메이커로 알려졌지만 반역을 도모했단 이유로 죽음을 맞는
진짜 정도전의 얼굴은?
질문에 대한 답은 강연을 통해 얻어가길...!!
여러분 정도전을 아시나요?
정도전이 어떤사람인지 알아야 그가 역적인지 공신인지 판단이 가능함.
정도전이 살았던 시대는 어땟나?
몽골과 약 30년간 전쟁을 벌인 고려.
1231년 몽골의 침략을 받아 온 백성이 항전을 벌였지만 약 100년간 몽골 왕조의 정치적 간섭을 받은 고려.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대에 친일파가 있었다면 이때는 친원파가 존재함.
원나라 세력을 등에 업고 고려 백성의 토지를 강탈.
한마디로 어마어마한 토지 도둑임. 피폐해진 고려 백성들의 삶.
고려 말의 흔한 한탄.
정도전이 태어난 1342년으로 고려는 국지불국의 상황임
그즈음 한가지 문제가 더해집니다. 왜구죠.
일본인 도적들의 끊임없는 침략.
친우너파 관리의 착취와 왜구에 시달리던 백성들.
공민왕의 목표
1. 원의 세력을 몰아낸다. 반원!
2. 고려를 정상화한다. 개혁!!
개혁을 도울 사람이 필요했던 공민왕. 바로 이때 정도전과 같은 변방 출신 관리들이 대거 등용됨. 공민왕의 개혁에 적극 동조한 변방 출신 관리인 정도전
정도전은 어떻게 왕의 개혁에 참여? 했을까요?
정도전의 고향은 경상도 봉화에요. 워낭소리의 배경인 경상북도 봉화.
1362년 21세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름 수많은 지방 출신이 과거를 통해 중앙 관료로 진출함.
고려말 농업 발달로 경제가 발전. 재산이 늘어난 지방 중소지주들이 자식 교육에 재투자를 함.
공민왕이 희망을 건 신흥사대부, 그 중에 정도전이 있었다.
고려시대부터 사대부가 있었나요? 조선의 양반을 일컫는 사대부는 고려 후기부터 등장합니다.
이 신흥사대부들이 만든나라 새나라가 조선이죠.
성리학의 이념을 바탕으로 형성된 정치 세력.
원래 성리학이란 그런 것.
성리학은 중국 송나라 때 유학의 한 계통으로 인간 본성과 우주 이치를 묻는 학문임.
수많은 성리학자들 가운데 개혁에 앞장선 정도전
정도전의 운명을 바꾼 세번의 결정적인 만남이 있어요.
성균관은 고려시대 인재 양성을 위해 설치된 교육기관 국자감을 1308년 개명한 기관임.
성균관에서 운명적으로 만나는 세사람.
성균관에서 성리학을 가르친 관장이 이색이에요. 이색의 문하생이었던 정도전과 정몽주.
훗날 정도전에 죽임을 당하는 이숭인도 성균관 멤버임.
성리학자로서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다.
성균관의 강사였던 세사람.
성리학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는 학자들이 모인 정치세력.
이색과 정도전은 아버지끼리 친구에요. 이색이 14살 연상임.
이색은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배운 유학생임. 성균관 후배들에 성리학을 가르침.
사제관계.
정몽주와 정도전의 관게는 예상외로. 굉장히 친한 사이에요.
정몬주가 5살 연상임.
나의 벗 몽주.
이색, 정도전, 정몽주 세사람의 우정 in 성균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세사람의 엇갈린 운명.
순수하게 사대부로서 고려의 혼란을 잠재울 방법을 고민.
한마음 한뜻이었던 셋. 시간이 지나며 드러나는..
여러분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판단할수 있겠어요?
이색, 정도전, 정몽주 세 사람의삶이 수백년동안 회자된다는 것은 그들 모두 시대를 변화시킨 훌륭한 정치가였다는 것.
신진사대부라는 같은 배경 아래서 정치노선이 달랐던 셋.
성균관에선 몰랐던 차이! 정도전의 운명을 바꾼 두번째 만남.민과의 만남임.
공민왕의 개혁... 반대파가 없었을까요?
친원파들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음. 반대파들이 공민왕을 시해하고 개혁을 물거품으로 만듦.
어린왕을 이용해 권력을 잡은 친원파.
반원과 개혁!!
친원파때문에 원라와의 외교관계를 재개.
우왕 원년에 고려로 사신을 보낸 원나라.
사신 영접사로 임명된 34살의 정도전. 그때 정도전이 난데없이 한 말...
" 붙잡아서 명나라로 보내겠다!"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죠. 그런데 정도전이 당시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한 것.
원나라를 쇠퇴 시키고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명나라.
사대부 가운데 남다른 정치인으로 두각을 드러낸 사건이죠.공개적으로 한거죠.
구차하게 산들 편할리 없다고.
이 사건으로 관직에서 쫓겨나 유배를 떠난 정도전.
1375년 신흥사대부들이 정도전에 동조하다가대거 관직이 박탈되고 유배됨.
정도전의 유배지는전라도 나주의 거평 부곡임.
3년동은 백성과 동거를 한 정도전.
백성들의 삶을 직접 보니 그동안 정치를 관념적으로 했구나.
가난한 농민들과 눈물 젖은 밥을 먹으며 한 농민과 나눈 대화.
"어이... 중앙에서 벼슬한 놈 같은데..:
임금의 총애만 받길 희망하고 재상이 돼서 아첨하는 놈 좋아하고
국가의 법을 농단해 자기 마음대로 이용하고
아주 앉아서 죄를 지은 놈이구나?
지금이 어느 땐지 모르고 바른말 하기만 좋아하고 아래에 있으면서 위사람을
들이받기만 좋아하니 그래가지고 너는 죄를 아니 저지를수 있겠느냐?"
이러니 유배를 오지..."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하겠노라 다짐하는 정도전.
정도전의 죄목을 추측하는 가운데 중앙 통치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긴.
부패한 지배층 때문에 고통받던 백성의 삶을 목격함.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꿀 정치!!
여기부터 다른 신흥사대부와 갈라지는 지점이에요. 유비를 오지 않았더라면 모를 뻔했던 민초들의 삶
당시 토지제도는 고려 농민들은 생산량의 10분의 1을 국가 관리에게 세금으로 바쳐야했는데 여기까지는 괜찮은 토지제도임.
그런데 고려는 독특한 제도를 갖고 있었어요. 농민이 직접 관리에게 세금을 내도록 되어있어 이게 문제를 일으켜요.
관리들이 갑질을 시작함.
생산량을 농부의 신고가 아닌 관리가 결정함. 여기까지는 농민들도 참아요.
백성들의 토지 수입으로 배불리던 관리는 당연히 관직에서 물러나면 그 권리를 반납해야 하는데
반납을 슬슬 안 하기 시작함. 암묵적으로 세습돼온 불법적인 관행임.
관리를 국가가 해줘야하는데 지배층에 대한 감시 기능을 잃은 고려.
최대 8명까지도..늘어남.
유배지에서 개혁을 구상하기 시작한 정도전. 그 생각에 기름을 부은 혁명!
4.19 혁명, 프랑스혁명.
혁명은 레볼루션의 번역어로 기존 체제의 혁파를 의미하죠.
과거 혁명이라는 말은 왕을 갈아치운다는 뜻. 위험한 생각을 가장 처음 한 사람.
맹자에요. 성선설을 주장한 중국의 사상가임.
군주는 갈아치울수 있다!!
맹자의 혁명론에 꽂힌 정도전.
정몽주임.
고려의 과거 시험 필수과목인 맹자.
논어, 맹자 , 중용, 대학이 과거 필수 과목이에요.
맹자에 깊은 감명을 받고 정도전에 권유한 정몽주.
정도전은 선물받은 맹자를 시간이 나는대로 하루에 한장씩 정독을 함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뒤바뀔지도 모르고 혁명의 명분이 된 맹자를 친구에게 선물한 정몽주.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백성의 고통을 목격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맹자 속 혁명이란 구절이 떠오른
다만 아직까지는 고려 왕조를 엎거나 왕을 바꾸는 혁명까진 생각을 안 했겠지만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느꼈던 정도전
정도전의 운명을 바꾼 세번째 만남.!!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 역사를 뒤바꿔놓은 결정적인 만남이죠.
3년만에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다른 신흥 사대부들과 다르게 복직이 어려웠던 정도전.
9년에 걸친 유배와 유랑 생활.
유랑의 시기에 이성계에게서 희망을 발견함.
이성계 군대를 보고 정도전이 한 말.
" 이만한 군대로 무슨일인들 못하겠습니까?"
둘의 만남으로 새롭게 쓰이는 역사.
이성계의 군대에서 개혁의 성공을 확신. 무슨 일인들에 담긴 함축적 의미.
여러분은 그 이후의 역사를 알고 계시죠?
9년뒤 정도전과 이성게는 조선을 건국하죠. 결과를 아는 사람이 빠지게되는 함정이
처음부터 그런 의도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
첫 만남부터 새 나라를 구상한게 아님. 이성계를 정치대열에 끌어들인 정도전.
최영 장군도 이성계와 양대 산맥 이었잖아요.
왜 이성계여야 했을까?
왜 이성계여야 했을까?
고려 최고의 군사력을 두 무장.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장군
신흥사대부 사이에선 인기가 없었어요. 반대개혁파들의 편에 있던 최영.
백성을 수탈하던 반개혁파. 청렴한 최영이 늙은 도둑을 살렸다.
기득권 세력에 때묻지 않은 이성계에게 희망을 본 정도전.
이성계가 야망을 품고 있었다면 이성계도 즉답하지 않고
용두사미로 대화를 끝내요. 두사람의 진심은 이런게 아니었겠죠.
과연 무명의 정도전이 혼자 이성계의 군대를 찾아가서 이성계가 만나줬을까요?
생면부지의 사람인데...??
이 만남에는 숨은 조력자가 존재해요.
이성계와 정도전을 연결해준 조력자는? 정몽주임.
정몽주가 두 사람을 연결해줫을 것. 이색이 쓴 시중에 그 증거가 잇어요.
무려 4262편의 시를 쓴 이색.
이 연구는 선생님이 하고있다고함.
1383년 가을,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던 그때 이색이 지은 시.
시 속에 정첨서는 누굴까.. 당시 왕명의 출납 담당 관직인 첨서서사사였던 사람들을 조사해보니 정씨 성을 가진 첨사는 딱 한명이었음. 바로 정몽주.
이색의 시를 통해 정몽주가 조력자라는 것을. 알아냄.
1383년에 이성계의 추천으로 전의부령에 오르고 성절사 정몽주를 따라 명나라 사신단 일원이 됨.
성균관의 수장까지 했던 정몽주. 어린시절부터 정도전을 봐왔는데
정몽주도 개혁을 주장함.
조선 건국을 반대했던 정몽주. 그러나 고려 안에서의 개혁은 찬성.
정몽주는 뜻밖에도 이성계 정도전과 함께 개혁을 도모함.
원나라를 멸망시킨 명나라가 그 땅을 반환하라고 요구.
최영이 가장 반대가 컸죠. 군대를 조직해 요동정벌을 주장.
압록강을 지나 명나라 땅을 공격할 계획을 세움. 요동 정벌에 반대한 이성계
반대하는 이유는 4가지에요.
4불가론.
이거 학교다닐때 많이 외웠는데 말이죠.
1. 작은나라가 큰나라 뜻을 거스를 수 없다.
2. 농사가 바쁜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할 수 없다.
3. 명과 싸우는 사이 왜구가 쳐들어올 것이다.
4. 장마철이라 전염병이 유행할 것이다.
그럼에도 요동정벌을 주장한 최영.
우왕과 최영의 적극적 의지로 요동 공격이 실현됨.
해서는 안되는 전쟁이다!!
개경으로가 정변을 일으킨 이성계. 이것이 바로 위화도 회군이죠.
우왕에게 두차례 회군요청했떤 이성계.
안 받아들여지니까 회군의 명분이 생긴거죠. 군사적 우위에 선 이성계는 우왕을 폐위하고 그해 겨울 최영을 처형합니다.
국가의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
만약 회군하지 않고 요동을 공격했다면? 요동점령까지는 가능햇을수도 있었을거라고하네요.
하지만 문제는 그 땅을 끝까지 지킬수 있었을까?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요동 공격의 책임을 누군가 져야 하니까요. 그럼 이성계가 위험해졌겠죠.
이성계에게 위화도 회군은 벼랑 끝에 내몰려 내린 불가피한 선택.
정몽주는 위화도 회군에 찬성함. 회군후 이성계가 권력을 잡자
고려 고위 관리에 오른 정몽주.
이성계파의 개혁으로 고려는 멸망의 길로... 새나라를 세우는 길로 역사가 전진됩니다.
썩은 뿌리를 도려내는 목숨을 건 개혁의 시작.
위화도 회군 후 실권을 잡은 정도전은 이성계와 개혁을 추진합니다.
갑자기 지위 급상승.
가장 먼저 정도전이 개혁한 것은? 감당할수 없는 세금을 내며 살던 농민들.
불법으로 세금을 받는 권리를 박탈해야 해요.
1389년 4월부터 문란한 토지제도 개혁을 시작.
이색또한 관직에 복귀. 함께 토지 제도 개혁을 논의함. 하지만 뜻밖에도 개혁을 반대.
아마 이색은 개혁의 결과를 고민했을 거라고해요.
이색또한 관직에 복귀. 함께 토지 제도 개혁을 논의함. 하지만 뜻밖에도 개혁을 반대.
아마 이색은 개혁의 결과를 고민했을 거라고해요.
관리들이 막대한 세금을 받는 것. 불법인것은 맞지만 그것이 오랜 관행아닌가
역사적 안목을 가졌던 이색은 토지 개혁이 불러올 결과를 알고 있었던 것.
고려 왕조를 지탱하던 관리들이 자신의 재산을 반납해야하는 결과가
고려 왕실의 권력 상실을 걱정.
옳은대로 했다가 나라가 망할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때 여기에 이색의 고민이 있는거에요.
이때부터 성균관에서 시작된 정도전, 정몽주 이색의 관계가 균열이 생기게됩니다.
정도전이 이색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함. 정몽주는 그들 사이에서 갈등을 함.
역사적 안목을 가졌던 이색은 토지 개혁이 불러올 결과를 알고 있었던 것.
고려 왕조를 지탱하던 관리들이 자신의 재산을 반납해야하는 결과가
고려 왕실의 권력 상실을 걱정.
옳은대로 했다가 나라가 망할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때 여기에 이색의 고민이 있는거에요.
이때부터 성균관에서 시작된 정도전, 정몽주 이색의 관계가 균열이 생기게됩니다.
정도전이 이색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함. 정몽주는 그들 사이에서 갈등을 함.
1391년 5월 고려가 멸망하기 1년 전에는 정도전이 이색을 사형하라고 주장함.
스승을 공격한 순간. 정도전의 인간관계는 파괴가 됩니다.
이색에게는 자기세력이 없어요. 청렴한 이색이 개혁에 반대하자 불법으로 재산을 모으던 관리들이 이색을 반가워합니다. 이색 뒤에 숨은 기득권 세력.
제자로부터 목숨을 위협당하며 이후 유배지를 전전하게 되는 이색.
결국 토지 제도 개혁은 2년만에 성공하게 됩니다.
1392년 3월 17일 사냥하다 낙마해 부상을 당한 이성계. 이 틈을 타 선수를 친 공양왕.
1392년 4월 1일 탄핵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정도전.
1392년 4월 4일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는 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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