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한19, 405화 한국을 더 사랑한 대한 외국인 19. 12위 ,11위, 10위



12위 한국 최고 영예 훈장 받은 외국인?

건국 훈장 등급 중 최고의 영예인 대한민국장, 
대한민국장 수훈한 독립유공자는 안중근, 윤봉길, 안창호등 33명입니다. 이중 외국인은 5명.

이번에 소개할 인물은 대한민국장을 수훈한 독립 유공자 외국인중 한 명입니다. 

대한민국 대표 독립투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외국인 독립 유공자는?  

중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중국 국민당을 이끌었던 총재, 중화민국 초대 총통!!



대한민국 독립을 위한 국제 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한 장제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을 수훈할 만큼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40년 9월 발표된 한국광복군 창군선언문 중,  장제스에 대한 김구 선생의 언급이 있습니다. 





광복군의 든든한 후원자인 장제스, 
장제스가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장제스는 " 중국 100만 군인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 한 명이 했다니 대단하구먼!"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장제스.  백점 김구와의 만남 이후 적극적으로 한국 독립운동을 돕기 시작합니다. 

장제스는 중국 군관 학교에 한국인 특별반을 편성했고,  독립 전쟁을 위한 한국광복군 양성에 적극 지원을 합니다. 장제스는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까지 한복광복군에 후원을 합니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 독립에 대한 의견을 끝까지 관철한 장제스.



독립에 대한 국제 사회의 지지가 절실했던 상황에서 이뤄 낸 쾌거입니다.  극악 무도했던 당시 일제의 만행!!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 임시 정부 지원도 어려웠는데, 당시 한국 상황에 큰 힘이 됐던 장제스의 구호. 장제스에게 대한민국 독립이 정치적으로 필요했을 가능성이 있죠.

다른 나라들의 지지와 지원이 절실했던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 임시 정부와 장제스, 필요에 의한 관계였더라도 큰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죠. 

임시 정부 및 광복군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던 장제스,  대한민국장이 증명하듯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인물 아닐까요?

11위 한국군의 초석을 다진 전쟁 영웅.


소련의 군사적 지원을 받던 북한, 반면 턱없이 부족했던 국군 전력.  전시체제로 훈련소를 설치해 병력을 키워 나간 북한군. 

군사 훈련도 받지 못하고 전장에 투입된 국군.  1951년 당시의 국제 정세가 



한발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상황, 그런데  한국군의 지휘 체계를 확보, 한국 군사력의 초석을 다진 사람.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6.25전쟁의 영웅!




제임스 밴 플리트입니다.  부임 이후 체계적인 훈련과 전략을 계획한 밴 플리트는 30만 대군 중공군의 5차 공세가 이어지자  미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도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의 6차 공세에서 패배하고 말았지만,  마치 조국을 지키듯 전투에 임한 밴 플리트. 

한국을 지키기 위해 창설한 한국군 훈련 기구인 야전 훈련 사령부,  급하게 징집된 사람들이 두 달여간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고 국군은 환골탈태를 하게 되었죠.
그 결과 훈련 덕분에 가칠봉 지구 전투, 백마고지 전투, 베티고지 전투를 승리, 1951년 밴 플리트 장군은 육군 사관 학교를 재창설하고 한국인 간부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고 해요.


한국군의 독자적 군사 훈련 체계를 정립, 두 달 훈련으로 이끈 승리의 결과들, 한국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결코 이루지 못했을 쾌거. 

평생 한국을 사랑하고 지켜 낸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밴 플리트. 

10위 현상금 200억 김구를 보호하라!!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이 모든 의거의 배후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이끈 인물이 바로 백범 김구입니다. 

당시 일본은 김구 검거 작전에 돌입했는데,  현상금은 약 200억원, 밀정만 해도 300여 명이었다고 해요.  김구 선생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던 일본.  독립운동가들의 심장 같았던 김구 선생의 존재.

김구 선생을 체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 일본. 현상금 200억원의 의미는?!
김구 선생 주변인들의 배신을 유도,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거액을 미끼로 유혹한거죠. 만약 당신에게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누구나 흔들릴 법했던 고액의 현상금이네요.

하지만 미래의 우리는 그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죠. 일제의 추격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김구 선생, 과연 어떻게 살아남았던 걸까?


그때 우리가 몰랐던 한 사람이 존재합니다. 



김구 선생의 피난을 도왔던 중국인 저보성.

익숙하지 않은 이름인데, 독립운동가의 피난을 도왔던 중국이라니 생소하네요. 저보성 선생은 중국 국민당 간부이자 자싱 지역의 유지입니다.  가족들을 총동원해 은신처를 제공했죠.



특히 중국 자싱시 호숙가에 있던 저보성 수양아들의 집. 기습에 대비해 주택을 개조했고,  김구 선생의 방인 2층에는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도록 작은 창을 여러 개 배치합니다. 
2층 침실의 마루를 들어올리면 1층으로 비상 탈출구가 나오도록 개조를 했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호수를 통해 피신할 수 있도록 조각배가 24시간 대기를 했다고 해요.

그리고 집에 걸린 빨래 색깔로 안전 여부를 전달, 흰색 옷감은 안전이요. 검은 적삼은 위험을 뜻하니 잘 살피고 부디 조심하시오!

일제 밀정들의 탐문이 미치자,  저보성 선생은 김구 선생의 안전을 위해  며느리 친정의 별장이르 피신시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치밀하게 김구 선생을 보호했던 저보성 선생.

위급상황에 대비한 비상 탈출구를 실제 목격했다는 전기자. 생존을 위해 꼭 두어야만 했던 간절함의 흔적이 보였다고 하네요.

한 기자가 중국 연수 중 만난 중국인들과의 기억중에 항일 동지라는 말을 중국사람들이 좋아했다고 해요.  반면 일본에서는 중일 전쟁 영화가 흥행하기도 했었죠.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가들을 지켜준 영웅,  그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숨은 조력자였습니다. 

출처: 프리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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