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없는 어린이들까지 고통받는 시리아의 현실.
전쟁으로 빼앗긴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미래.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전쟁의 비극
이땅에서 전쟁의 총성을 대신 평화의 꽃이 피어나기를!!
다시 있어선 안 될 이땅의 전쟁 19.
제2차 세계 대전 끝 무렵 1945년 3월!! 당시 전설의 사격수로 불린 미군 전차 포병인 스모이어.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극적인 전투로 꼽히는 퀼른 성당 전차전.
독일군의 판터 탱크 포격에 성공함. 교차로를 지나는 승용차에 탄환을 발사함.
종군 기자가 촬영한 과거 쾰른 성당 전차전 영상을 시청.
영상 속에 담긴 충격적인 진실. 위장한 독일군인줄 알고 승요차에 탄환을 발사.!
그런데 차량에 탑승한 사람은 민간인 여성임.
전투 현장을 대피하던 중 공격을 당한 그녀.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는데.. 무고한 민간인을 저격했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한 스모이어.
68년만에 피해자에게 사과하기 위해 고인의 묘가 있는 독일 쾰른 방문.
그곳에서 만난 뜻밖의 인물.
반대로 미군의 위장 차량인줄 알고 공격한 독일군.
독일 기록을 보관소의 도움으로 68년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
전쟁의 화마속에 희생당한 피해자.
가해자가 되어 평생 마음의 고통을 지게된 군인들. 모두가 희생을 치러야 했던 전쟁의 결말..
1958년부터 1976년 까찌 18년간 영국의 아이슬란드에서 계속된 전쟁.
전쟁을 벌인 이유는 생선 대구 때문임.
혹독한 날씨와 부족한 지하자원으로 가난했던 섬나라인 아이슬란드.
대구잡이로 생계를 이어간 아이슬란드 사람들. 1950년대이후 아이슬란드의 대구 어획량이 급감을 함.
아이슬란드인들의 생계를 위협함.
영해를 4해리에서 12해리로 아이슬란드의 영해 확대선언을 함.
당시 국제 해양법이 마련돼 있지 않던 상황인데.. 유일하게 영국은 해군 함정을 대동해 대구잡이를 지속함. 아이슬란드 경비정이 영국 해군 함정에 위협 사격을 함.
영국이 영해확대를 인정하며 제2차 대구전쟁 종전.
1972년 아이슬란드의 영해 50해리 확대 선언.
제 2. 3차 대구전쟁 발발.
거대한 그물로 대구를 잡은 영국 현대식 어선인 트롤선.
제2차 대구전쟁 당시 영국 트롤선과 아이슬란드 경비정이 충돌함.
아이슬란드 승조원 1명이 사망함. 아이슬란드는 영국과의 국교를 단절.
NATO 탈퇴선언까지 함. 결국 중재에 나선 NATO.
자원을 두고 벌어진 전쟁... 인간의 욕심 때문 아닐까요?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의 최전선 중 한곳인 벨기에 이프르.
갑자기 독일군 전영에서 울려 퍼진 노래. 독일어로 부른 크리스마스 캐럴인 고요한밤 거룩한 밤.
전쟁터에 캐럴이 울려퍼진 이유는?
이날은 12월 24일인 크리스마스 이브. 독일군이 부른 캐럴에 연합군이 화답을 함.
캐럴로 하나가 된 양측 군인들...
캐럴을 부른 뒤 참호 밖으로 나온 연합군과 독일군 지휘관들.
이때만큼은 서로 초콜릿을 나눠 먹은 양측 군인들.
어느새 화합의 장이 된 전쟁터. 크리스마스에는 잠시 휴전!! 축구경기를 하기까지함.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죠.
당시 현장에 있던 군인이 부모님께 보낸 편지가 있음.
전쟁이 아니었다면 모두가 행복했을 크리스마스.
하지만 하루 만에 끝난 기적.
다시 총구를 겨눈 연합군과 독일군.
총성을 멈춘 작은 기적. 이땅의 모든 전쟁이 하루빨리 사라지길...!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영국기와 독일기. 결국 영국기를 격추한 독일기.
영국군 조종사는 목숨은 건졌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의족을 착용하고 현역 복귀함.
복귀이후 26대의 독일기를 격주, 일명 나무다리 에이스로 등극함.
그러나 결국 포로 신세가 된 더글러스 베이더..
포로 베이더에게 마음이 쓰인 갈란트
바로 이때 갈란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한 포로 베이더.
이후 영국 공군에게 연락해 영국제 의족을 요청함.
갈란트는 부하들에게 의족을 실은 영국기를 공격하지 말것을 지시.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후 운명이 뒤바뀐 두 사람.
포로수용소에서 나와 영국으로 돌아간 베이더.
당시 독일 전투기 총감인 갈란트는 미군 포로 신세로 전락해 전범 재판을 받게됨.
갈란트의 무죄를 주장한 베이더.
결국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됨.
마치 영화같은 감동실화임.
전쟁도 가로막을수 없던 진정한 우정!
1925년 10월 그리스와 불가리아 사이의 벨라시카 산맥.
불가리아 경비대가 발견한 낯선 남성. 국경을 넘어온 그리스군 병사임.
불가리아군이 그리스군 병사를 사살함.
불안감에 불가리아 국경 수비대는 그리스 국경 수비대 초소를 습격.
이과정에서 또 다른 그리스군이 사망함.
사건의 발단은 한마리의 개 때문임. 사건당일 그리스 국경 수비대 앞에 나타난 개 한마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국경을 넘고 만 그..
사건 경위 확인후 그리스에 공동조사를 제의.
불가리아 남서쪽 마을 페트리치를 불법점령. 요구사항 이행을 주장함.
그런데 이때 그리스군이 페트리치 주민 약 50명을 학살함.
정당화될수 없는 엄연한 범죄에요.

떠돌이 개 때문에 시작된 황당한 전쟁..
전쟁의 결말은 언제나 비극일뿐.
화학자들의 최고 영예는 노벨화학상이죠.

전 세계가 식량난으로 고통받던 1900년대 암모니아 합성법으로 저렴한 질소 비료로 식량 생산량이 약 2배 증폭. 현재 전 세계인이 섭취하는 단백질의 약 1/3이 질소비료영향을 받는데 약 20억명의 식량난을 막은 질소비료.
인류를 구한 위대한 발명이에요.
그런데 프리츠 하버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자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 이프로 지역에서. 연합군을 향해 가스공격을 가한 독일군. 하루에 연합군 500명이 사망함. 약 7천명이 가스에 중독..!
제1차 세계대전 종전후 일명 독가스의 아버지로 불린그.
전범으로 지목되자 스위스로 피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사용.
프리츠 하버 역시 유대인임. 수만명의 동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인류의 구원자에서 악마로 전락. 결코 존경받을수 없는 두 얼굴의 과학자..
그리스 신화속 인류에게 물 뿐아니라 재앙까지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
인류에게 혁명과 고통을 안겨 준 과학계의 프로메테우스!!
맨해튼 프로젝트라고해서 독일보다 먼저 원자 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주도한 프로젝트임.
천재 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두지휘.
약 22만명의 피해자가 발생.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불러온 오펜하이머의 원자폭탄.
오펜하이머는 국가를 위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과학자로서의 윤리를 외면하고 살상 무기를 개발함. 자신이 개발한 무기로 인해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오펜하이머.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결국 핵무기 회의론자가 된 오펜하이머.
하지만 세상의 거센 비난을 받아야만 했던 그.!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린 오펜하이머.
과연 과학이 인간에게 유익하기만 한것인가.
과학자가 흘린 후회의 눈물.. 그 의미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1969년 7월 14일 고요한 새벽..
온두라스 vs 엘살바도르 전쟁
군인 외 민간인까지 합세함. 불과 100시간 만에 사상자 약 1만 7천명 발생.
끔찍한 전쟁의 원인이 된건 한달전 축구장에서 시작된 전쟁때문임.
1969년 6월 8일 멕시코 세계 축구 대회에서 본선행 티켓을 건 경기
예선 1차전에서 온두라스가 승리함.
온두라스 응원단들이 숙소 앞에서 난동을 피워서 진것이라고 엘살바도로 언론이 말함
온두라스 응원단들이 엘살바도르 대표 팀의 컨디션을 해쳤다는 것.!
일주일뒤예선 2차전 경기에서도 날카롭게 대립한 두나라. 심지어 양국 응원단의 집단 난투극까지. 온두라스인 2명 사망.
온두라스 내 엘살바도르인에게 보복테러를 함. 수십명을 사살하기까지..
결국 온두라스 정부는 엘살바도르와 국교단절선언.
얼마뒤 온두라스의 공군 기지를 습격한 엘살바도르 공군.
1960년대부터 국경선, 이민자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두나라.
엘살바도르인이 무단 경작한 농지가 온두라스 국토 약 20%임
온두라스에서 불법 점유 농토를 환수하는 토지개혁법을 발효.
수천명의 엘살바도르인이 추방되자 엘살바도르 정부가 강력항의함.
그동안 쌓인 양국 갈등이 축구를 계기로 폭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축구전쟁은 100시간 만에 휴전이 성립되며 종결.
그러나 인명피해, 무역 단절등 큰 피해를 입은 두나라..
축구 역사에 남을 전설의 스트라이커.
세계 최고 공격수로 급부상한 2005년. 독일 세계 축구 대회를 위해 코트디부아르 팀 주장으로 합류를 함.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 출전함.
아프리카 축구 강국인 나이지리아, 카메룬에 밀려 31년간 세계 축구대회 본선 진출 전무.
그런데
아프리카 예선에서 연승을 거둔 코트디부아르 국가 대표팀.
세계 축구 대회 본선 진출할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순간.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드로그바의 소감.
인터뷰 도중 무릎을 꿇은 드로그바.
당시 오랜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던 코트디부아르.
종교, 종족, 경제등 오랫동안 이어진 지역갈등. 2002년 정부와 반군이 충돌하며 내전발발.
폐허가된 코트디부아르는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이 발생함.
전쟁으로 고통받는 조국을 위해 고민한 드로그바.

드로그바의 인터뷰 이후 일주일간 울리지 않은 총성.

2007년 평화 협정 체결!! 약 5년만에 내전 종식.
아름다운 해변을 품은 작은 나라... 압하지야.
여기에 숨겨진 조지아와 압하지야의 비극..
8세기에서 9세기 당시 주권이 있었던 왕국.
1921년 조지아가 소비에트 공화국에 합병될때 조지아내 자치주로 지정된 압하지야.
조지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려 하자
조지아로부터 독립을 선언.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조지아는 1992년 압하지야 독립 무효화를 선언.
독립을 막으려 조지아가 압하지야를 침공하며 전쟁 발발.
전쟁초기 조지아군이 압하지야를 장악. 이후 약탈, 폴행, 학살등 만행을 저지른 조지아군.
더이상 당할수없었던 압하지야는 조지아군에 맞선 압하지야 소수 민족 무장단체.
기세를 역전시키며 조지아군을 격퇴. 이때 발생한 또 다른 비극.
압하지야인들의 피의 복수.
전쟁 전까지만 해도 이웃이자 동료였건만.. 비록 전쟁은 끝났지만 깊은 상흔이 남은 압하지야.
1988년 영국 공영 방송에 초대된 한 노신사.
노신사의 품에 안기는 한 여성. 그리고 눈물을 보인 그.
50년전 시작된 이들의 이야기.
1938년 당시 영국 금융업계 종사자였던 윈턴. 휴가중 친구가 사는 체코슬로바키아에 방문.
그런데 친구를 따라 봉사활동을 간 그곳.. 유대인 수용소.
수용소 내 유대인 아이들을 돕기로 결심한 윈턴.
사람들과 뜻을 모아 프라하에 사무실 오픈. 일명 유대인 아이들 구출작전.
당시 나치의 감시가 심각하던 상황. 윈턴의 아이디어
입양 목적의 경우 아이들의 비자 발급이 가능.
나치 장교를 포섭해 수용소 내 유대인 아이들을 빼낸뒤
영국 신문에 입양광고를 게재. 수많은 영국인이 윈턴의 뜻에 동참함.
그렇게 무사히 영국행 기차에 오른 유대인 아이들..
그의 선행이 약 50년이 지나 알려지게 된 사연.. 여느때처럼 유대인 아이들을 입양 보내던 날 한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기차 출발 시각을 늦춘 윈턴.
나치에 발각되고 만 기차. 결국 수용소로 돌려보내진 약 250명의 아이들.
다음 입양 계획에도 차질이 생김.
평생을 죄책감에 괴로워한 그는 50년뒤 아내의 설득으로 알려진 그의 선행.
객석의 모든 이들이 기립을 함.
그가 목숨을 걸고 구한 아이들이었던 것. 어느새 성인이 돼 가정을 이룬 그들..
2014년 체코 최고 권위의 훈장 백사자 국가 훈장을 수여함.
체코 프라하 중앙역에 위치한 윈턴의 동상.
그가 구한건 669명의 가정이자 미래였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
북한군은 전차 부대를 앞세워 서울까지 진군. 북한군의 맹공으로 결국 수도를 빼앗긴 국군.
북한에 점령당하는 위기에 직면함.
8월 31일 압도적인 병력을 이끌고 낙동강으로 건너기 시작한 북한군.
미군 M-26퍼싱 전차 2대중 1대의 전차가 고장.
열악한 상황에 후퇴를 결정한 UN군.
약 500명의 북한군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그.
밤 10시 30분경부터 다음날 아침 7시 30분까지 벌어진 전투.
낙동강 제2방어선으로 복귀한 코우마 중사. 수많은 전우의 목숨을 구한 코우마 중사의 결단.
목숨을 바쳐 아군을 구한 코우마 중사.
6.25전쟁 당시 숭고한 희생정신을 발휘한 또 다른 숨은 영웅!
1951년 10월 서해안 부근에 진지를 설치한 북한군.

국군은 해상 통제와 피난민 구출을 위해 서해 경비 작전에 돌입함.
1952년 1월 4일
피난민 구출임무를 맡은 홍대선 하사.
순위도 상륙에 성공한 홍대선 하사는 피난민을 절반쯤 수송했을 무렵..
북한군의 기습에 작전 수행중인 국군과 피난민까지 위험한 상황임.
이때 큰 결심을 한 홍대선 하사.
동료에게 피난민 수송을 부탁한 뒤.. LST-801함 내에 있던 작은 배.
홀로 VP정을 타고나와 포격 속으로 뛰어든 그..
피난민을 대피시키기 위해 북한군을 유인한 것.
얼마뒤 홍대선 하사가 타고 있던 VP정의 뱃머리가 파손. 항진이 불가능한 상태로 굴하지 않고 해안에 내려 기관총을 발사.
피난민이 구출선에 도착하도록 스스로 표적이 되기로 결심을 함.
장렬히 전사한 홍대선 하사..
반드시 기억해야 할 영웅의 이름 홍대선..
영웅들의 희생이 필요치 않은 평화의 시대가 오기를..
21세기 최악의 비극은 시리아 내전만큼.
내전이 끊이지 않는 DR 콩고.
내전속에서 큰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
2008년 이들의 현실을 대신 전한 패트릭 소장.
수많은 여성의 목숨을 빼앗은 대량살상 무기.
전쟁 지역의 수많은 여성이 겪는 끔찍한 현실.
2010년 UN의 발표에 따르면 약 1만 5천명의 여성들이 전쟁중 성폭행 피해..ㅠㅠ
특히 DR 콩고에서는 후투족, 투치족 모두 상대 부족의 대를 끊기 위해
상대부족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해 가족들 앞에서 성폭행을 함..ㅠㅠ
참담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DR 콩고의 여성들.
무함마드의 온몸을 덮은 화상과 수포.
그런데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해서 몸을 파고드는 화상.
무함마드가 살고 있는 시리아 북부 라스 알아인
소수민죽 쿠르드족과 터키의 분쟁지역으로 터키군으로 의심되는 이들이 라스알 아인을 공습함.
한밤중의 폭격으로 큰 부상을 입은 민간인들.
인성분의 발연제인 백린. 조명탄, 연막탄 등 비살상 용도로 제작을 함.
그런데 최대 5천도의 고온을 발생시키는 위력을 악용
생명을 위협하는 살상요 무기 백린탄을 개발. 발화점이 낮아 불이 잘 붙는 백린.
소멸할때까지 연소해 쉽게 진화가 불가함.
장기와 뼈까지 파고드는 불길..ㅠㅠ 온몸이 타들어가며 전해지는 끔찍한 고통.
2000년 이슬람 저항 운동 단체인 하마스 공격 당시.
전쟁의 잔혹함으로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지 않길...!
절대 사용하면 안되는 또 다른 대량 살상 무기.
당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신경독 VX
현존하는 독성 물질 중 가장 강한 독성을 보유함.
피부 접촉시 치사량은 불과 10mg 임.
VX가 처음부터 살상무기로 개발된게 아니에요.
1952년 영국의 한 화학 기업에서 살충제 목적으로 개발함.
하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사실을 확인한뒤 상업적 사용과 연구를 중단함.
그런데 미국에 넘겨진 VX 제조법 이후 대량 생산을 시작함.
이란과으 ㅣ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할라브자 전 지역에 VS 가스를 살포. 약 5천명이 사망함.
극심한 우유증에 시달린 약 7천명의 사람들..
이후 전범 재판에 선 후세인.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은 그.
반인륜적인 살상무기가 이 땅에서 사라지길...!
그런데 구덩이 안에서 발견된 것은.. 4천구의 폴란드인 시신임.
독소 불가침 조약으로 폴란드 동부를 점령한 소련.
당시 붙잡힌 폴라드인 포로가 45만명중 소련의 비밀경찰 NKVD에 넘겨진 4만명의 포로들
NKVD는 심문 끝에 반소련 포로들을 분류하고 엘리트 출신 군 고이급 장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음.
포로들을 소련의 적이라고 판단한 스타린 공산당 서기장.
2만명 이상의 폴라드인 포로들 중 카틴 숲에서만 약 4천명의 포로를 총살한뒤 암매장함.
전쟁 후 비인도적 범법 행위여부는 조사후 본국으로 송환됨.
국제법을 무시한 소련의 만행.
1945년 카틴 숲 학살이 드러났을 당시 소련은 혐의를 극구 부인함.
수십년간 은폐됨. 1989년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에 의해 뒤늦게 진상 조사를 시작함.
유감을 표하며 소련의 만행을 인정함.
가슴아픈 역사를 치유하기 위해선 진실된 사과가 이뤄져야 합니다.
2위 역사상 최악의 사상자를 낸 전투.
소련군의 평균 수명은 24시간.
참혹한 피의 기록을 남긴 전쟁의 정체!!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환점인 스탈린그라드 전투.
유대인 인종 청소를 자행한 나치 독일 아돌프 히틀러.
2년뒤 히틀러가 조약을 파기하고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함.
최악의 독소전쟁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 발발.
소련의 주요 거점으로 향하는 군사적 요충지.
독일군 사령군인 파울루스는 항공기로 10만톤 이상의 포탄을 투하함.
순식간에 불바다가 된 스탈린 그라드..
그런데 스탈린그라드 시민을 보호하지 않은 스탈린.
피난하는 시민을 막기 까지함. 약 4만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
한순간에 갈곳을 잃은 죄없는 어린아이들.
어쩔수없이 소년병에 지원해 위험한 전투에 투입됨.
전세가 유리했던 독일군. 식량고갈로 겨울혹한까지 몰아치자 동사하는 독일군이 속출함.
반격에 나선 소련군은 독일군의 무기보급로를 차단.
이후 소련군에 포위당한 독일군.
약 200만명의 인명피해를 남긴 역사상 최악의 단일 전투.
과연 전쟁은 누굴위한 것일까요?
1위 버튼 하나로 인류를 구한 남자.
1945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뒤 모두가 바랐던 세계평화.
이후 미,소, 냉전시대 시작.
핵전쟁 직전 상황까지 봉착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 긴장의 끈을 놓을수 없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지속.
냉전이 최고조로 향하던 1983년 9월 26일 자정 소련 핵전쟁 관제 센터의 정찰 위성이 전한 경보.
즉각 비상사태에 돌입. 소련이 미국에 반격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제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수도..
반격준비를 마친 관제센터는 최정결정만 남은 상황임.
일류의 핵전쟁 발발 여부가 그의 손에 달린 것.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곧바로 상부에 보고를 함.
그가 컴퓨터 오류라고 보고한 이유는 미국이 핵전쟁을 일으킨다면 5발만 발사하진 않았을 터.
정찰 위성이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미사일로 잘못 인식함.
그런데 인류를 구한 페트로프 중령이 군복을 벗어야 햇음.
소련당국은 미사일 정찰 위성 결함을 은폐하기 위해 보고서를 잘못 작성했다며 누명을 씌운 것.
세계시민 협회에서 2006년 인도주의를 실천한 공로로 세계 시민상을 수여.
전 세계를 핵전쟁으로부터 구한 히어로!! 페트로프 중령.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 마하트마 간디-
<출처: xtvN 프리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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